2021. 6. 6. 11:13ㆍJapan Life
'パクさん。左側で待ってください。(박 상, 왼쪽으로 빠져서 기다려주세요)'
일본에서 한국으로 출장을 갈 일이 있어, 출국심사대에서 공항에서 심사를 받던 중 한참을 심상치않은 눈으로 모니터와 여권을 번갈아 갈아보던 출국 심사관이 내게 말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냐며 이유를 물으니,
'아마 아닐 것 같긴 합니다만... 혹시 모르니까요'
라고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주지 않고, 일단 왼쪽으로 빠지면 다른 직원이 인솔하러 온다고 했다. 내 뒤에서 줄을 서있던 출국자들이 모두 나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한다. 나도 이런경우는 처음이라서 멘붕이 와있었고, 함께 출장가는 일본인 회사동료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인 회사동료에게는 별일은 아닐 것이니 먼저 심사대 통과해서 면세점 보고계시라고 말씀드리고, 출입국 관련 직원이 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출입국 직원이 내게 다가왔고 심사대 한쪽편에 있는 사무실 앞으로 나를 인솔해갔다. 공항경찰에 가까운 복장을 한 출입국 직원은 일본에서 쓰는 신분증 (재류카드)를 달라고 했고, 잔뜩 쫄아있던 나는 허겁지겁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건냈다. 사무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조금 기다리라면서 그는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의자에 앉아서 도대체 무슨상황인지 어리둥절한 나는 불안한 마음에 내 한 달간의 행적을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뭔 잘못을 저질렀나...?'
'내 가방에서 뭔가가 발견된건가...? 아니 그럼 휴대품 검사때 걸렸겠지...'
'술먹다가 나도 모르게 누구랑 시비가 붙은건가...? 아니 내가 맞았으면 맞았지 때릴 일은 없었을테고...'
'공항 출국심사대에서 걸릴정도의 범죄를 저지를만큼 간이 크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 국내법을 모범적으로 준수하며 지내온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길에 쓰레기라도 버린게 걸린건가? 그게 출국심사대에서 걸리정도로 문제가 되나?'
'범죄를 기억못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도 있나?'
정말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만 생각을 다했던 것 같다.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경찰차가 지나가면 괜히 쫄리는 것처럼...
사무소 직원이 오기까지는 시간은 꽤나 걸렸다. 아마도 1시간 가까이는 앉아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나의 상상력은 모두 빗나갔고, 사무소 직원은 멋쩍은 표정으로 시간을 끌어서 죄송하다면서 여권과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래도 뭐가 문제였는지는 알아야겠다 싶어서, 무슨 일이었냐고 되물었다.
사무소 직원은 '나와 생년월일이 동일하고', '박씨 성을 가진 한국국적의 남성'이 일본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렀는데, 성형이나 개명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규정상 조사했다는 것이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1시간 동안 관할 경찰서와 통화하면서 조사를 했던 모양이다.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보안상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으나, 출국길이 막힌 걸 보면 수배가 내려졌다는 건데 꽤나 큰 일을 저질렀던 모양이다.
그렇구나... 세상에 참 이런일도 다 있을 수 있구나. 아무튼 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해서 만난 회사동료도 내가 무슨 범죄에 휘말렸나하며 전전긍긍 했는데 아무 일 없어 다행이라며 웃었다. 좀 느긋하게 면세점 쇼핑도 하고 싶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 동갑내기 때문에 쇼핑은 포기하고 곧장 게이트로 향해야 했었다.
3~4개월뒤, 다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출국할 때는 심사대에서 걸리지 않는 걸 보니, 아마 그 동갑내기는 경찰에 잡혔겠지.
나와 같은날 같은 성씨로 태어났고,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20대를 보냈던 동갑내기야.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일본까지 가게 되어서 나쁜일에 몸을 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죄값을 치루고 나면 착하고 성실하게 남은 삶을 보냈으면 좋겠다.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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